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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의역사

선사시대란

선사시대(先史時代)란 역사기록(史)에 앞서(先) 존재했던 시대로 문자기록이 없는 시대입니다. 김해에 대한 문자기록이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지』의 구야국(狗邪國)과 구야한국(狗邪韓國)이며, 『삼국유사』가락국기에 보이는 대가락(大駕洛)과 가야국(伽耶國)입니다. 『삼국지』는 3세기 후반 경에 편찬된 중국의 역사서이지만, 다른 기록과 고고학자료에 비추어 볼 때, 기원전후의 시기까지 올라가는 사실도 기록하고 있고, 고려 문종 30년(1076)에 편찬된 「가락국기(駕洛國記)」는 가락국의 건국을 기원 후 42년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기원 전후의 시기부터 김해지역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하였다고 보아 좋을 것입니다.

김해의 선사시대

김해지역에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은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생각되지만, 김해의 선사시대는 김해지역에 사람들이 집단을 이뤄 흔적이 처음 확인되는 신석기시대부터 김해에 대한 문자기록이 보이기 시작하는 초기철기시대 이전까지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김해의 신석기시대는 약 7천∼5천5백년 전입니다. 기원전 5천년 경부터 기원전후까지 무려 5천년 동안 김해의 선사시대로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상세히 나눌만한 시기적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선사시대의 김해인 들이 사용했던 도구의 재질에 따라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신석기문화와 청동기문화의 교체

김해지역에서 신석기문화와 청동기문화의 교체를 보여주는 확실한 자료는 없습니다. 한민족의 청동기문화가 만주의 요녕지역에서 기원전 12∼10세기 경에 시작되어 남해안지역에서 기원전 2세기 경에 종말을 고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기원전 12∼10세기는 요녕지역에서 청동기문화가 시작되는 시기이니까, 남해안 김해의 청동기문화는 보다 늦었을 것입니다. 충남 부여 송국리유적과 진주 남강유적의 기원전 6∼4세기 경의 연대를 참고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해지역의 선사시대는 기원전 25세기부터 기원전 10세기 경까지를 신석기문화,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를 청동기문화의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선사시대의 구분과 명칭

수가리패총 발굴전경

신석기와 청동기문화의 두 단계로 나누어지는 김해의 선사시대에는 어떠한 명칭이 적당할까요? 문자기록이 없으니까 임의적으로 이름을 부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해의 신석기문화를 「최초의 김해인」, 김해의 청동기문화를 「구간사회(九干社會)」로 불러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초의 김해인」이란 처음으로 김해지역에 생활 흔적을 남긴 사람의 뜻으로 신석기시대와 문화를 뜻합니다. 「구간사회」란 김해지역이 아홉 마을로 나뉘어 각 촌장인 구간들에 의해 영도되던 시기로, 때로는 전쟁과 축제를 위해 모였던 부족연합단계의 사회를 가리킵니다. 구간(九干)이란 아홉(九)의 큰(干) 사람으로,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수로왕의 등장을 기원했던 가락국 이전의 지도자들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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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 [문화재과, 330-6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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