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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감재료들

방추차

『삼국지』에는 변진 사람들이 “뽕나무를 재배하고 누에치기를 할 줄 알고 겸과 포를 만들 줄 안다”, “광폭의 세포를 만든다” 등의 의생활 관련 기록이 있습니다. 겸은 실크(絹) 종류의 고급 직물을 말하는데, 중국의 경우 한대(漢代)의 지배신분층이 겸포로 홑옷을 만들어 외출복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광폭의 세포는 마의 일종인 경마로 짠 섬세한 직물이므로 이 역시 고급직물입니다. 가늘게 짠 백(帛)을 일컫는 능(綾)도 있었습니다. 능은 얼음결과 같은 무늬가 있는 얇은 천인데, 허왕후가 시집올 때 능현(綾峴)에서 비단바지를 벗어서 산신령에게 바친 기록이 있어 역시 지배층이 사용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겸포나 능에 버금가는 수준의 직물로는 면포가 있었습니다. 면포는 품질이 낮은 고치를 부풀려 만든 누에고치솜을 물레로 자아 만든 실로서 두텁게 짠 포를 의미입니다. 견직물보다 품질은 떨어지나 질기고 실용적인 직물이었습니다. 또 고운 베를 의미하는 세포가 있었으므로, 당연히 추포같은 거친 베도 있었을 것입니다. 일반민들은 당연히 면포나 추포 같은 직물을 많이 이용했겠지요.
직물을 짜는 기술은 3세기 대에는 상당히 발전되어 있었습니다.

현악기

가야유적에서 방추차가 많이 출토되는데 이것은 직조가 많이 행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질 좋은 섬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사(製絲) 기술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가야 지역에는 일찍부터 많은 현악기들이 있었고, 6세기에는 가야금과 같은 수준 높은 현악기가 만들어집니다. 현악기에는 현이 필수적이지요. 이 현을 소리의 고저에 맞게 굵고 가늘게 만들고, 또 쉽게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즉, 현악기의 발전과 섬유 제작 기술은 서로 맞물리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섬유는 쉽게 부식되므로 고고학 자료에서 출토되는 예가 드문데,고령 지산리 32호분에는 금동관을 싸고 있는 섬유 조직이 발견되었습니다. 고령 지산동 44, 45호분에도 직물흔적이 남아 있는데, 왕릉이었으므로 역시 비단과 같은 고급 직물이었을 것입니다.이와 같은 가야의 직조 기술은 나중에 왜에까지 전해지게 됩니다.

<권주현>

의복 갖춤

고구려 고분벽화

가야의 의복 모양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자료는 “의복과 거처가 진한과 같다.”고 한 기록이 참조됩니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와 대략 비슷하다고 하므로, 기본적인 패턴은 고구려 고분벽화와 신라 토우의 옷 모양에서 추출해 낼 수 있습니다. 바지, 저고리가 기본이 되고, 거기에 겉옷(袍), 모자(帽)가 더해져서 세트를 이룹니다. 여성의 경우 치마(裙)와 저고리, 겉옷이 있었고 모자 대신 머리장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고구려에는 지배계급의 여성이 모자를 쓰는 경우도 눈에 띠나 보편적이지는 않습니다.

일반인들의 평상복은 저고리와 통이 좁은 바지차림인데,고구려 고분벽화의 평민이나 병사가 착용한 기본 의상이 참조됩니다.재료는 무채색의 면포나 마직이었겠지요. 지배층의 경우 채색된 겸포로 만든 폭이 넓은 바지에 저고리와 겉옷을 입고 고깔이나 책과 같은 모자를 착용했습니다. 고분벽화에는 여성도 바지를 착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무용 등 활동적인 일을 하기 위한 복장입니다. 가야의 여성이 활동복으로서 바지를 입었을지는 의문이나 치마 속을 받쳐주는 속바지는 착용했습니다. 재료는 역시 지배계층의 경우 비단류나 세포였고 일반민들은 베 종류나 면포였겠지요.

저고리에는 여미기 위해 고름이나 허리띠를 착용했고, 다른 색깔의 옷깃을 달아서 포인트를 주기도 했습니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허리띠에 인수나 수식을 늘어뜨려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권주현>

장신구와 신발

귀걸이

가야인들이 사용한 장신구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구슬입니다. 『삼국지』 한조에는 구슬을 보물로 여기고 옷에 꿰어 장식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구슬을 금보다 귀하게 여기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색색의 유리구슬이나 수정, 옥구슬이나 대롱옥 등으로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어 착용했습니다. 또 조가비를 다듬어서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팔찌는 왜에서 수입한 제품도 있었습니다.

금제 악세사리도 많이 출토되는데, 목걸이와 팔찌, 그리고 다양한 모양의 귀걸이가 있습니다. 특히 금귀걸이의 경우 그 모양의 변화에 따라 지역적인 특성과 시기를 구분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답고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팔찌 수정목걸이 목걸이

신발은 짚으로 만든 짚신이나 나무로 만든 나무신발(木履)이 가장 일반적이었습니다. 짚신의 모양은 부산 복천동 고분에서 출토된 신발모양 토기가 참조되며 나무신은 일본 나라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배층은 가죽신이나 가죽장화를 신었습니다.

신발모양토기 신발모양토기

일반 가죽신은 경북 현풍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금동 장식 신발(飾履)이나 신라 지역에 많이 출토되는 식리와 디자인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며, 가죽장화는 양직공도(梁職貢圖)에 등장하는 백제사신 등의 사신이 신고 있는 것과 같은 디자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권주현>

머리모양

『삼국지』 변진 조에 12국에 왕들이 있는데 모두 체격이 크고 의복이 깨끗하고 머리를 길게 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머리를 길게 한다는 것은 묶어서 틀어 올리지 않고 그대로 늘어뜨린 모습을 묘사하는 것인데 3세기 가야소국의 왕이나 귀족의 헤어스타일이 아닌가 합니다. 전사 집단이나 일반민의 경우, 이런 머리모양으로는 활동이 불가능하겠지요. 머리를 틀어 올리고 모자나 투구를 착용해야 활동성과 기동성이 있을 겁니다.

머리를 뒤로 묶어서 늘어뜨린 모양 머리위에 틀어올린 모양

여성의 경우 『북사』 백제전의 기사에, 백제의 여성들이 출가하기 전에는 머리를 뒤로 묶어 늘어뜨리고, 출가하면 양쪽으로 나뉘어 머리에 얹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아직 출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여성은 머리를 뒤로 묶어서 늘어뜨린 모양이 있고, 양갈래로 묶은 경우, 그리고 그대로 자연스럽게 내린 모양도 있습니다.

출가한 여성은 다양하고 복잡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는데, 가장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모양은 역시 머리위에 틀어올린 모습입니다. 수산리 고분 벽화에는 백제여성과 같이 머리를 양쪽으로 얹고 있어 주목됩니다. 즉, 고구려여성의 머리모양이 백제의 여성과 공통되는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머리모양을 출가이전과 이후를 달리 하는 것은 고대사회 공통으로 보아도 될 듯합니다. 따라서 가야여성 역시 출가 이전에는 머리를 뒤로 한갈래나 양갈래로 묶어 내린 모양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며, 출가한 여성은 머리 위에 머리카락을 하나 혹은 양쪽으로 틀어 올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권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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