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분청. 김해를 가야(伽倻) 너를 만난다


김해의도자환경

짧은 목항아리 김해식 토기, 높이 22.6cm

이른 시작, 눈부신 발전: 김해토기와 가야토기 
예로부터 남해안지역은 비옥한 퇴적토로 인해 농사가 잘되고, 물과 나무를 비롯한 천연자원이 풍부하며, 기온도 온난하여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대대로 정착하여 살아왔다.

이와 같은 자연환경은 도자기 발전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자기를 빚기 위해 필요한 좋은 흙, 깨끗한 물, 땔감이 되어 줄 나무가 풍부하였기에 이른 시기부터 도자기가 제작되었다. 특히 김해지역은 철기시대부터 도자기 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1907년 김해군 회현리 패총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어 ‘김해토기’라 불리는 철기시대의 대표적 토기들은 낙동강 하류를 중심으로 한 남해안 일대의 패총문화권에서 출토되고 있다.

김해토기는 당시 김해지역의 뛰어난 도자기 제작 기술을 보여준다. 이 토기는 고온소성만 한 것이 아니라, 불을 다루는 기술이 매우 발달하여 산화소성에서 환원소성까지 도입하였다.

이는 해안에 접하고 있다는 지리적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변한(弁韓) 소국들 중에 하나인 김해의 가야국(구야국)은 해운교역상의 지리적 이점과 철 생산기반을 이용하여 한반도 서북부의 낙랑군 및 대방군과 교역하면서 그들로부터 중국의 선진문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한 낙동강 하류의 지류인 황강(黃江) 유역에는 천혜의 철광이 있었기 때문에 철문화가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이렇게 발달된 철 문화는 토기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는 개방된 가마에서 낮은 온도로 구운 적갈색의 민무늬 토기(無文土器)가 성행하였다.

그 후 기원 전후한 시기부터 폐쇄된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운 회색 계통의 단단한 경질토기(硬質土器)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3세기 말까지 지속된다. 이를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 또는 와질토기(瓦質土器)라고 하는데, 이들은 토기 모양이 각 지역별로 차이가 없고 거의 비슷해서 진, 변한 공통 문화라고도 한다. 와질토기는 2세기 중엽을 기점으로 해서 한 차례의 진전을 보여, 그 전후를 각각 고식(古式)와질토기와 신식(新式)와질토기로 구분한다.

김해토기는 비슷한 시기의 다른 민무늬토기와는 달리 고운 찰흙을 써서 만든 것이 많은데, 보통 모래 50~60%에 진흙 40~50%를 섞은 후 수비과정을 통해 점토를 정제하였다. 진흙을 끈처럼 만들어 말아 올리는 코일링 방법으로 성형한 뒤, 돌림판을 돌려 목과 아가리 부분을 다듬고 손이나 대나무 칼, 조가비 등으로 문질러 완성했다고 여겨진다. 일부는 손으로 주물러 만드는 것에서 탈피하여 원심력을 이용한 물레성형을 하였다. 또한 성형 능력도 이전 시대에 비해 월등하게 발전하였다.

항아리의 경우 표면 전체에 문살무늬(格文)이나 삿무늬(繩蓆文)가 들어가 있는데, 삿무늬는 문살 모양을 새겨 넣은 방망이를 이용하여 두들겨서 장식했다. 이 무늬는 중국 전국시대의 토기에서 이미 나타났는데, 그것이 낙랑을 거쳐 남부지방까지 도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합식 쇠뿔잡이 목항아리, 창원 다호리
조합식 쇠뿔잡이 목항아리, 창원 다호리, 높이 29.8cm
화로모양토기, 김해 양동리
화로모양토기, 김해 양동리, 높이 12.7cm

김해토기는 둥근 바닥을 가진 것이 많은데, 이것은 납작바닥이 위주였던 민무늬토기와는 대조되는 기형상의 특징이다. 주요 기종으로는 민무늬토기 이래의 짧은 목항아리, 독 모양 항아리, 외에 작은 단지, 화분 모양 그릇, 화로모양 토기, 굽다리접시, 시루 등이 있다. 그릇 한쪽이나 양쪽에 쇠뿔형 손잡이가 달린 토기가 많은 것이 특색이고, 굽다리 접시의 경우 뚜껑이 없고 다리에도 구멍이 뚫리지 않았다.

김해식 토기는 앞서 확인한 바와 같이 밀폐된 가마에서 보통 900~1,000도의 높은 온도로 소성되었다. 이는 당시 야철 기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뛰어난 기술은 국내에서 계승, 발전되는 것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해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김해토기는 일본의 쓰시마섬, 이키섬, 기타큐슈의 야요이시대(彌生時代)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삼국 김해토기는 가야토기로 계승 발전된다. 여러 소국들의 연맹체로 이루어져 있던 가야는 끝내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신라에 병합되었다. 가야 연합의 종주국, 금관가야가 바로 오늘날 김해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은 낙동강 유역의 기름진 평야가 있어 안정된 경제기반 아래에 문화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독자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가야토기는 능숙한 조형솜씨가 발휘된 이형토기, 상형토기와 굽다리 그릇이 많이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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