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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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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래리유적 : 퇴래리유적은 해발 150m의 퇴래말산(退來末山)의 동쪽 기슭의 구릉성 산지에 입지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낙동강을 마주 하고 있다. 1984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목곽묘 11기, 옹관묘 14기, 석곽묘 2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된 유구는 대체로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때에 축조된 것이다.

개요

퇴래리유적은 해발 150m의 퇴래말산(退來末山)의 동쪽 기슭의 구릉성 산지에 입지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낙동강을 마주 하고 있다. 1984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목곽묘 11기, 옹관묘 14기, 석곽묘 2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된 유구는 대체로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때에 축조된 것이다.

조사지역 내에서 옹관묘의 출토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러한 현상은 김해지역 일반적인 고분의 경우와 다른 점이라 하겠다.

오히려 옹관묘가 대량으로 조사된 인근의 창원 삼동동유적과 비교될 만한 대규모의 옹관묘유적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유적의 극히 일부만 조사되었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성격은 알 수 없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전퇴래리출토 판갑(板甲)은 고사리문과 깃털장식이 부착된 것으로 가야지역에서 확인된 판갑 중 가장 장식성이 뛰어난 갑옷으로 평가된다

목곽묘

목곽묘 무덤터와 출토유물

퇴래리유적에서는 총 11기의 목곽묘가 조사 되었는데 김해지역의 일반적인 목곽묘 구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모두 등고선 방향과 일치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바닥에 돌을 깐 것과 깔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그러나 양자 간의 조성시기에는 큰 차이가 없다.
유물은 대체로 양쪽 단벽에 연하여 부장되어 있었는데 주로 토기류였다. 출토유물 중에는 김해지역의 특징적인 토기가 대부분이지만, 함안, 창원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고배와 노형토기도 일부 있어 이 지역과의 교역이 폭넓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퇴래리유적은 출토유물로 볼 때, 그 시기는 대체로 4세기 후반 때에서 5세기 전반 때에 걸친 것으로 생각된다.

옹관묘

옹관묘 무덤터와 출토유물

퇴래리 고분군에서는 많은 수의 옹관묘가 조사되었는데 인접해 있는 창원 삼동동유적의 예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조사된 옹관묘는 모두 14기인데 대부분 주옹의 크기가 60cm를 넘는 대형이라는 점에서 부산ㆍ김해지역의 소아용 옹관과는 구별된다. 옹관은 모두 주옹(主饔)과 부옹(副饔)으로 이루어진 합구식(合口式)이며, 용기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던 토기를 이용하였다.

석곽묘

석곽묘 무덤터와 출토유물

퇴래리유적에서는 모두 2기의 석곽묘가 발굴되었는데 석곽의 내부에서 꺾쇠가 출토된 점으로 보아 석곽내에 목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곽의 평면구조는 모서리를 말 각으로 처리하여 전체적으로 타원형에 가까우며, 출토유물은 철기류가 대부분이다. 다만,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구의 수가 적어 현재로서는 퇴래리유적의 석곽묘에 대한 정확한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전퇴래리출토갑판

전퇴래리출토갑판

전 퇴래리출토 판갑은 종장판정결판갑(縱長板釘結板甲)으로 부산ㆍ김해지역에서 확인된 판갑과 제작기법이 동일하다.

이와 같은 제작방법은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 가야 지역과 낙동강 동안지역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판갑의 가슴부분 양쪽에는 장식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고사리문양과 반주형의 철판을 잇대어 부착하였고, 반주형철판(半舟形鐵板)의 외연(外緣)과 수미부(首尾部)에는 깃털을 꽂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김해지역에서 판갑이 출토된 유적은 대성동유적ㆍ양동유적ㆍ두곡유적 등이 있는데, 퇴래리고분군에서 확인된 판갑은 이들 유적에서 출토된 판갑에 비해 실용성보다 장식성이 강조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판갑은 4세기 후반때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종장판정결판갑의 부속구로 알려진 반주형철판은 근래까지 용도가 불명확 하였으나 최근의 조사 성과에서 단갑 착용 시 목을 보호하기 위한 측경판(側頸板)이었음이 밝혀졌다.
(복천동 57호분 출토 판갑 참조). 그러나 전 퇴래리출토 판갑의 반주형철판은 아마도 측경판이 아니라 장식을 위한 부속구의 하나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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