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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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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산동유적 : 칠산동유적은 김해시 중심부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4km가량 떨어져 있다. 여기에 동북(東北)에서 서남(西南)으로 길게 뻗은 표고 100~120m 정도 높이의 몇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는 칠산이 있는데, 고분군은 이산의 중심부, 즉 명법 1구 마을 뒤쪽 해발 100m 전후의 산정(山頂)을 중심으로 널리 분포하고 있다.

개요

칠산동유적은 김해시 중심부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4km가량 떨어져 있다. 여기에 동북(東北)에서 서남(西南)으로 길게 뻗은 표고 100~120m 정도 높이의 몇 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는 칠산이 있는데, 고분군은 이 산의 중심부, 즉 명법 1구 마을 뒤쪽 해발 100m 전후의 산정(山頂)을 중심으로 널리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유적은 김해 일대에 산재하고 있는 고분군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87년과 88년 2차에 걸쳐서 경성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는데, 유적의 전체적인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네 지역으로 나누어 조사하였다. 조사된 무덤은 총 120기이다. 종류는 목곽묘, 석곽묘, 목관묘, 횡구식석실묘, 옹관묘 등인데 , 서로 중복축조 되어 있는 것이 많았다.

칠산동유적터

특히 최고식(崔古式)의 석곽묘가 다수 확인되어 석곽묘의 원류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고, 또 5세기 후반 이후에도 서민층의 무덤으로 목관묘가 성행하고 있었음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출토유물은 토기류 및 철기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각종의 장신구류들도 다수 출토되었다. 이들 출토유물로 보아 이 고분군은 3~6세기 때에 형성된 유적으로 추정된다.

제1지구

칠산동제1지구무덤터와 출토유물

제 Ⅰ지구는 구릉 남쪽의 완만한 사면(斜面)에 위치한다. 목곽묘 23기, 석곽묘 3기, 토광묘 2기, 옹관묘 2기 등 30기가 조사되었다. 이들 무덤의 주축방향은 모두 남 북향(南北向)이며, 서로 중복 축조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수적으로 가장 많은 목곽묘는 규모가 모두 중ㆍ소형 급에 속한다. 또한 1, 2, 27호분은 주곽의 남쪽에 부곽이 딸린 것으로, 주곽은 도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곽내부에는 유물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목곽묘 내부에서는 각종 와질ㆍ도질토기를 비롯하여, 소형철정(鐵鋌), 철부(鐵斧), 철모(鐵矛) 등 각종의 철기류와 수정 및 유리제의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이들 목곽묘는 출토유물로 보아 3세기 후반에서 4세기말에 이르는 시기에 영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2지구

칠산동제2지구 무덤터와 출토유물

제 Ⅱ지구는 칠산동유적의 묘역(墓域)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대형 석곽묘 밀집 지역이다.
일본강점기 때부터 심하게 도굴되어 커다란 개석들이 노출되어 있었다. 석곽묘 4기, 횡구식석실묘 1기, 옹관묘 1기 등 모두 6기의 분묘가 조사되었다.

4기의 석곽묘 가운데 4호분과 5호분은 거의 도굴되지 않아 각종 도질토기와 환두대도를 비롯한 무기류 등 많은 유물이 부장 되어 있었는데, 출토유물의 조합상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이 4호분은 남성, 5호분은 여성일 가능성이 컸다. 또 이들 두 무덤 사이에는 옹관묘 1기가 나란히 매장되어 있어 세 무덤이 서로 친연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Ⅱ지구의 무덤들은 출토유물로 보아 6세기 전반대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3지구

칠산동제3지구 무덤터와 출토유물

제 Ⅲ지구는 ⅠㆍⅡ지구 사이에 위치하며, 이곳은 칠산동유적 가운데서 산정(山頂)의 비교적 평탄한 곳이다. 목곽묘 12기, 석곽묘 15기, 수혈계 횡구식석실묘 2기, 옹관묘 5기, 토광묘 3기 등 37기가 조사되었다. 이들 무덤의 주축방향은 모두 동서향(東西向)이며, 피장자의 두향(頭向)도 동쪽이었던 것 같다.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중엽에 걸쳐서 축조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곽묘는 비교적 중ㆍ소형 급이며 11호분과 같이 부곽이 딸린 것도 있다. 특히 Ⅲ지구에서 주목되는 점은 14ㆍ27호분 등과 같은 최고식(最古式)의 석곽묘가 확인된 점이다. 이들 무덤은 묘광을 깊이 파고 석곽을 설치하여 매장주체부가 완전히 지하라는 점, 길이에 비해 폭이 넓은 점, 개석(蓋石)이 존재하지 않는 등의 특징이 있다.

칠산동제3지구출토유물

이와 같은 초기 석곽묘는 4세기 때 목곽묘의 특징과 같으나 단지 내부주체시설이 목곽에서 석곽으로 전환되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5세기 전엽으로 추정되는 33호분의 경우는 부곽시설로서의 석곽이 주곽에 연접해서 축조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제4지구

칠산동제4지구 무덤터와 출토유물

Ⅳ지구는 Ⅰ지구로부터 서남쪽으로 다소 떨어진 완만한 사면(斜面)에 위치한다. 이곳에서는 석곽묘 8기, 옹관묘 5기, 목관묘 31기, 근대의 민묘 1기의 모두 45기가 조사되었다. 출토 유물 등으로 보아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서 영조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Ⅳ지구에서는 목관묘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 목관묘는 묘광이 얕고 세장(細長)한 것이 특징인데, 묘광과 목관 사이에 할석(割石) 등을 보강하여 목관을 고정하게 하였다. 이들 목관묘는 모두 소형으로서 부장유물도 빈약하며, 출토 유물로 보아 모두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서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이곳에서 많은 목관묘가 확인된 사실은 5세기 후반 이후에도 서민층의 무덤으로 목관묘가 대단히 성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칠산동제4지구 출토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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