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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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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리유적 : 유적이 위치하는 곳은 주촌면(酒村面) 양동리(良洞里) 산 3번지로서, 가곡(歌谷)마을 뒤 야산 일대의 약 3만평정도가 유적에 해당된다.

개요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시례부락 내에 소재하는 서민계층의 무덤유적이다.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976년~1980년에 걸쳐 4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유적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1978년 6월 2일에 사적 제26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김해 예안리 고분군 안내도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유적은 시례부락 일대에 그대로 잔존하고 있어 가옥 재건축, 농지개량, 도로개설 등 지역개발에 따른 유적의 파괴, 훼손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발굴조사를 통해서는 목곽묘 59기, 수혈식석곽묘 93기, 횡구식석실묘 13기, 옹관묘 17기 등 총 183기에 달하는 4~7세기대의 분묘 유구가 검출되었고, 여기에서 1,400여점의 부장유물과 매우 양호한 상태의 피장지 인골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구는 627㎡ 남짓의 매우 좁은 면적 내에 상하로 4겹 정도 중복되어 있었는데, 이를 통한 묘제, 토기 등 유물의 연구는 가야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의 근간이 되고 있으며, 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양호한 상태로 검출된 인골자료는 고대인의 형질인류 학적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목관묘

목관묘

목관묘는 모두 34기가 조사되었으며, 대체로 표고 9m이하의 평지(平地)나 거의 평지(平地)에 가까운 지역에 영조되었다. 목관묘의 주축방향은 7기만 남 북향(南北向)이고, 나머지는 동 서향 (東西向)으로서 동서향(東西向)이 압도적으로 많다.

묘광의 깊이가 10cm전후로서 거의 바닥만 잔존하는 것, 40cm전후인 것, 70cm이상의 깊은 것 등 3종류가 있다. 목관은 대체로 두께 3cm내외의 판재(板材)로 조립한 것으로서, 평면 형태는 'ㅍ'자형, 단면형태는 'ㅂ'자형의 상자형태이다. 목관묘의 구조와 출토물로 보아 1~2세기 때에 영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삼한시대 김해에 존재하였던 가야국의 문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목관묘중복축조

목관묘

160호분을 비롯하여 총 59기의 목곽묘가 조사되었다. 시상(屍床)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의해 2개 유형으로 나눠지는데, 이 속성은 시간적인 흐름도 동시에 반영하고 있어 시상석이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변화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또 주ㆍ부곽을 갖춘 것과 그렇지 못한 유형으로 대별되는데, 유구의 규모, 부장유물의 양, 유구의 분포빈도 등으로 미루어 전자의 경우가 이 유적의 상위계층 묘인 것으로 추정된다.

160호분
예안리 최고(最古)단계의 목곽묘로서 별도의 부곽이 마련되어 있는데 예안리 유적 내에서는 가장 대형급에 속하는 것이다. 최후 단계의 와질토기와 양이부호(兩耳附壺)를 비롯한 항아리류 일색의 고식(古式) 도질토기, 철촉, 철모, 철부 등의 철제무기류, 골촉 등 학술적으로 귀중한 가치가 있는 유물이 다량 부장되어 있었다.

138호분
4세기 중엽 무렵에 만들어진 목곽묘인데, 부곽이 별도로 딸린 구조이다. 주곽에는 큼직한 돌을 깔아 시상(屍床)을 마련하였다. 출토 유물은 노형기 때에 와질토기적인 요소가 약간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미 대부분 도질토기로 전환되고 있다.

150호분
단독 묘로서는 대형 급에 속하는 목곽묘이다. 본 유적에서 유일하게 가죽 끈으로 엮어 만든 철제투구와 더불어, 유자이기(有刺利器), 철부, 철촉 등 철제 무구ㆍ무기류가 부장되어 있는 반면 토기류는 1점도 매납되어 있지 않았다.

석곽묘

석곽묘

석곽묘는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할석으로 곽을 짜서 만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혈식 석곽묘라 부른다. 예안리유적의 석곽묘는 시상(屍床)의 유무, 형태에 따라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시상이 없는 무시상(無屍床), 바닥 전면에 돌을 간 전면시상(全面屍床), 몇 줄 정도만 돌을 깐 열상시상 (列狀屍床)이 그것인데, 시간적으로도 대체로 무시상 → 전면시상 → 열상시상으로 변화해 간다.

석실묘

석실묘와 석실묘출토유물

석실묘는 앞 시기의 석곽묘와는 달리 여러 번에 걸친 사용, 즉 추가장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출입할 수 있는 입구의 설치가 필수적이다. 그러한 입구 축조 방법에 따라 횡구식(橫口式), 횡혈식(橫穴式), 수혈계횡구식(竪穴系橫口式) 석실묘로 구분된다.

예안리 유적의 경우는 횡구식석실묘만 확인되고 있는데, 출토인골과 유물을 분석한 결과 추가장 할 때마다 새로운 시상을 만들기도 하고 기존의 시상을 그대로 이용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때 먼저 매장된 시신의 뼈는 한쪽에 밀쳐서 쌓아 두었는데 하나의 무덤에서 12사람분 이상의 뼈가 확인된 예도 있어, 많으면 10차례 이상 계속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옹관묘

옹관묘출토유물

예안리 유적에서는 옹관묘가 17기 확인되었는데 2개의 토기를 맞대어 만든 합구식(合口式)이 주를 이룬다.

몇 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석곽묘의 배묘(培墓)로서 석곽의 최상단 높이에 맞춰 만들어져 있었다.

4세기 때의 것으로 보이는 O호 옹관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5세기 때가 중심이다.
옹관은 유ㆍ소아 전용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는데, 어린아이의 뼈는 연약하여 잘 남아 있지는 않지만 신생아ㆍ유아(乳兒) ~2.5세 정도까지의 유아(幼兒)초기 단계까지만 한정하여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가야인의 형질

해골 우리나라의 토양은 대체로 산성이 강하기 때문에 유기질은 쉽게 부식되어 잘 남아 있지 않다.
예안리유적의 경우는 다행히 유적 상부에 형성된 패총의 영향으로 토양이 중화된 탓에 고인돌이 매우 양호한 상태로 잘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이들 인골자료의 연구를 통해 가야인의 형질적 특징이 어느 정도 해명되고 있는데 평균 신장은 남성이 164.7cm, 여성이 150.8cm로 고신장(高身長)이며, 현대인에 비해 비교적 안면이 높고, 코가 좁으며, 콧부리가 평평한 편이다. 또 전체 사망자 중 남자보다는 여자가, 그 중 특히 장년층(40대)의 여성 사망률이 높은 점과 미성년의 사망률도 전체의 28.1%로 비교적 높은 점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그 외 선천성 탈구, 골절 등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반면, 날카로운 이기(利器)에 의한 손상흔적 즉, 전쟁 등으로 인한 부상, 또는 사망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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