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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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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리유적 : 유적이 위치하는 곳은 주촌면(酒村面) 양동리(良洞里) 산 3번지로서, 가곡(歌谷)마을 뒤 야산 일대의 약 3만평정도가 유적에 해당된다.

개요

구유적이 위치하는 곳은 주촌면(酒村面) 양동리(良洞里) 산 3번지로서, 가곡(歌谷) 마을 뒤 야산 일대의 약 99,000㎡정도가 유적에 해당한다.
이 유적은 일찍부터 도굴이 진행되어 많은 유물이 유출되었고, 그 중 일부 유물은 이곳 출토품으로 학계에 알려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여러 기관의 지표조사에서도 많은 유물이 채집되어 학계에 소개되기도 하여 김해지역 중심 고분유적의 하나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1984년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후 1990 ~ 1996년의 기간 동안 동의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4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확인 된 유구는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등 557기이고, 출토유물은 토기와 철기, 청동기, 장신구 등 5,100여점에 이른다.

확인된 유구는 전부 무덤으로 기원전 2세기의 삼한 전기부터 5세기의 삼국시대까지 장기간에 걸쳐 목관묘 → 목곽묘 → 석곽묘의 순으로 조성되었다. 그 중 목관묘를 통해서 가야의 개시점이 기원전 1세기 때에 해당함을 알 수 있었고, 목곽묘에서는 162호 목곽묘의 한경(漢鏡)을 통해 2세기 후반대에 이미 대형목곽묘가 출현하였음은 물론 절대연대를 파악하는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다. 그리고 2ㆍ3세기대의 수장급(首長級) 대형무덤이 다수 발견되어, 이를 통해 고분의 개념 및 성격에 대한 논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외에도 목곽내부를 불에 태운 특수한 유형의 목곽묘도 6기나 확인되었다. 출토된 각종유물은 시기별 가야문화의 실상과 변화상을 한 눈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종래 이 분야의 연구에서 부족했던 많은 자료를 보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래의 잘못된 연대관이나 인식의 수정과 함께 국제성을 띤 가야문화의 세련된 모습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양동리모습

철기 중에서는 2세기말에 해당하는 313호 목곽묘 출토 '소용돌이형 장식'이 있는 이형철기(異形鐵器)와 장검(길이 121cm), 3세기대의 235호 목곽묘출토 환두대도(길이 120cm) 등이 주목되며, 이들은 가야철기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동기로는 우리나라 청동기문화의 마지막 잔재를 보여주는 것과 이국에서 유입된 희귀한 의기(儀器)나 이기(利器), 장신구 등이 수습되어, 이를 통해 해당유물의 기능과 원류, 연대, 대외교섭 및 교역 등에 관한 문제를 살필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 427호 목관묘출토 동경(銅鏡) 3점과 동검(銅劍) 1점에 대한 의의를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일괄품 중 동경(銅鏡)은 소위 방제경(倣製鏡) 또는 왜경(倭鏡)으로, 동검은 변형세형동검(變形細形銅劍)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의기성(儀器性) 청동기의 변화 과정상에서 보면, 다뉴세문경(多細文鏡)과 한국식동검으로 대표되는 초기철기시대 이래의 청동의기 전통이 조기가야(早期加耶) 시기에 새롭게 변화ㆍ창출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유물의 명칭이나 계보 등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즉, 지금까지 양동리유적에서 발굴된 각종자료들과 함께 고려해 보면, 이들 청동의기의 제작, 전파, 보급의 중심지역이 낙동강 하류유역의 가야사회로 추정되고, 따라서 한ㆍ일 양 지역에서 출토되는 이들 유물의 명칭도 '가야식(加耶式)'으로 불리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장신구류는 다양한 구슬류가 중심을 이룬다. 그 중에서 270호와 322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흉식(胸式) 또는 경식(頸式)은 가야 장신구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러한 발굴성과를 통하여 가야사회의 문화와 국가ㆍ사회적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자료를 통하여 그 성격을 규정하여보면, 구야국(狗耶國) 또는 본가야(本加耶)는 활발한 해상활동을 통하여 번성한 해양왕국(海洋王國)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사실은 『위지 동이전(魏志 東夷傳)』의 철교역에 관한 기사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양동리유적에서 다량으로 출토된 각종 철기 유물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뒷받침해 주고 있다. A.D. 2세기 후반에서 4세기까지는 가야철(加耶鐵)의 전성기임과 동시에 해상활동도 가장 활발한 시기였고, 외래문물도 해로를 통해 곧바로 들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철 생산이 가야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면, 거꾸로 철시장의 상실과 가야철의 효용가치 하락은 가야가 쇠퇴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낙동강하류역의 가야는 5세기를 고비로 그러한 징후를 보이며, 새롭게 부상한 신라나 백제의 압박으로 점차 쇠망하였다고 판단된다.

목관묘

목관묘

목곽묘

목곽묘

석곽묘

석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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