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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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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로유적 : 구지로유적은 대성동유적의 북쪽 구릉선단부(丘陵先端部)로 부터 북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표고 10m전후의 저평(低平)한 구릉에 영조되어 있는 무덤유적이다.

개요

구지로유적은 대성동유적의 북쪽 구릉선단부(丘陵先端部)로부터 북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표고 10m전후의 저평(低平)한 구릉에 영조되어 있는 무덤 유적이다.

원래 이곳은 대성동유적의 북쪽 구릉선단부에서 아주 완만하게 경사져 내려오는 북쪽 끝부분에 해당하므로 "구지로분묘군" 으로 별도 이름을 붙였으나, 실제로는 대성동유적의 일부에 해당한다.

이 유적은 구지로 확장공사 때 분묘군이 발견되어 1993년 경성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으며, 지금은 도로 밑에 묻혀 버렸다.

조사된 무덤은 목관묘, 목곽묘, 옹관묘, 석곽묘 등 모두 57기가 조사되었으며, 이 가운데 목관묘와 목곽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물은 2005-06-15, 철기류 등 400여점이 출토되었으며, 2~4세기 때에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관묘

목관묘

목관묘는 14기가 확인되었는데, 묘광은 대체로 길이 270cm전후, 폭 110cm전후, 깊이 60cm전후 이다.
주축방향은 모두 동서향(東西向)이며 피장자의 두향(頭向)은 잔존하는 인골의 상태 등으로 보아 거의 대부분이 동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목관묘는 내부에 안치된 목관의 재질 및 형태에 따라서 2유형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Ⅰ류는 목관의 재질이 통나무로써, 형태는 이른바 「할죽형(割竹形)」이다. 14기의 목관묘 가운데 2기만 이에 해당한다.

Ⅱ류는 목관의 재질이 두께 3cm내외의 판재(板材)로써, 평면 형태는 'ㅍ'자, 단면형태는 'ㅂ'자 상형(箱形)이다. 14기 가운데 11기가 이에 해당한다. 한편, 12호분의 경우는 다른 무덤과는 달리 상면(床面) 중앙을 원형으로 깊게 더 파서 부장갱을 마련하였으나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목관묘의 구조와 출토유물로 보아 2세기 때에 영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삼한시대 김해에 존재 하였던 구야국의 문화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목관묘 출토유적

목관묘출토유적

목관묘의 출토유물은 모두 47점으로 빈약한 편이다.
특히 47점 가운데 12호분에서만 13점이 출토 되었고 나머지 목관묘에서는 1~5점 정도만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12호분만이 조합우각형파수부호(組合牛角形把手附壺) 2점, 광구호(廣口壺), 소형옹(小形甕), 주머니호 각1점 등을 부장하였을 뿐, 나머지 무덤에는 같은 종류의 유물 1ㆍ2점 정도만 부장 되었다.
철기류도 12호분을 제외하면, 개개의 무덤에 철도자(鐵刀子), 철부(鐵斧), 철겸(鐵謙), 철모(鐵矛) 각 1점씩이 별개로 부장되었을 뿐, 철기류 상호간에 조합된 부장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12호분에는 피장지의 머리에 두른 철대(鐵帶) 1점, 청동팔찌(靑銅製釧) 2점, 골제(骨製)의 귀걸이, 유리제의 목걸이 등이 부장되어, 나머지 목관묘에 비해 유물의 부장량이 월등하였다. 특히, 12호분 에서는 성인의 인골이 남아 있었는데 머리에 돌린 철대(鐵帶)는 일종의 장신구로서 우리나라 무덤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칠기류(漆器類)는 무덤 일부에서 흔적 정도만 남아 있었는데 기형(器形)은 원통형(圓筒形), 고배형(高杯形)이다. 통나무목관을 부장했음이 확인되었다.

목곽묘

목곽묘

목곽묘는 38기가 조사되었다.
묘광은 길이 130~440cm, 폭 60~245cm, 깊이 5~56cm정도로, 중ㆍ소형 급에 해당한다. 그러나 38호분은 전체적인 조사가 불가능하였지만 묘광의 폭이 350cm로 다른 무덤들에 비해 큰 편이다.
그러나 묘광의 깊이는 대체로 얕은 편이다. 무덤의 주축방향은 남북향(南北向)이 34기로 압도적으로 많고 동 서향(東西向)은 4기 뿐이다. 목곽묘끼리 서로 중복되기도 하고, 목곽묘와 목관묘가 중복된 경우도 있다.

피장자의 두향(頭向)은 대체로 남 북향은 남쪽, 동 서향은 동쪽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 목곽묘의 연대는 출토유물로 미루어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사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목곽묘출토유물

목곽묘출토유물

목곽묘에서는 철제(鐵製)의 갑주(甲胄)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투구(胄)는 18호분에서 위쪽이 S자형으로 만곡(彎曲)된 종세장판혁철주(縱細長板革綴胄)를 비롯하여, 10호분과 같은 소형분에도 1점이 부장되는 등 4세기 전반부터 정형화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갑옷(甲)에는 판갑(板甲)과 찰갑(札甲)이 있는데, 판갑은 종장판판갑(縱長板板甲)이 4세기 때 무덤에서는 주곽에, 5세기 전엽의 무덤에서는 부곽에 부장되는 특징을 보인다.

찰갑(札甲)은 3호분과 같은 4세기 후엽의 무덤에서부터 부장되기 시작하여, 39호분 주곽에서는 판갑 (板甲)과 함께 찰갑(札甲)의 부속구인 경갑(頸甲), 요갑(腰甲)이 세트로 부장되고 있는 등, 4~5세기 때의 갑주자료가 풍부하게 출토되어 있다.

석곽묘

석곽묘

석곽묘는 42호 1기만 조사되었다. 묘광은 길이 208cm, 폭 88cm, 깊이 55cm의 소형으로 소아용(小兒用)의 무덤이다. 묘광안에 직경 40cm내외의 할석(割石)을 2단으로 세워 쌓아 만들었는데 그 규모는 길이 150cm 폭40cm, 높이 55cm이다. 출토유물은 상면(床面)의 가운데에서 출토된 청동제 마형대구(馬形帶鉤)1점이 유일하다.

석곽의 구조와 마형대구의 특징으로 보아 3세기 말에 조성된 무덤으로 추정된다. 마형대구는 북방유목민족의 특징적인 물품으로, 이와 같이 소형묘에 까지 부장되어 있었다는 것은 북방 유목민족의 문화가 가야에 상당히 확산ㆍ보편화 되었음을 시사한다. (김 재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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