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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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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동유적 : 대성동유적은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구지봉(龜旨峰)과 김해패총(金海貝塚)으로 유명한 회현리 패총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인접하여 김수로왕릉이 있다.

개요

대성동유적은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구지봉(龜旨峰)과 김해패총(金海貝塚)으로 유명한 회현리 패총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인접하여 김수로 왕릉이 있다. 즉, 공설운동장의 바로 북쪽 뒤편에 표고 22.6m의 '왜(애)꼬지'라 불리는 구릉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경성대학교박물관에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차에 걸쳐서 발굴조사를 한 결과 금관가야 지배자집단의 공동묘역으로 판명되었다.

입지조건이 좋은 구릉의 능선부에는 왕 묘와 이에 상응하는 지배자의 무덤이, 경사면에는 보다 신분이 낮은 자들의 무덤들이 형성 되어 있었다. 조사된 무덤은 총 136기로서 종류는 목관묘(木棺墓), 목곽묘(木槨墓), 옹관묘(甕棺墓), 석곽묘 (石槨墓), 횡혈·횡구식석실묘(橫穴·橫口式石室墓)이다. 이 가운데 목곽묘가 묘제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구릉의 능선부에 형성된 대형의 목곽묘들은 매장주체부의 크기와 부장유물의 질과 양에서 3 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걸쳐서 형성된 금관가야 지배자들의 무덤이며 특히 이 유적의 대형 목곽묘(木槨墓) 조사를 통해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3세기말을 기점으로 하여 처음으로 사람과 말(馬)을 순장(殉葬)하고, 무기를 구부려 부장하는 습속과 함께 기마용(騎馬用)의 철제갑주(鐵製甲胄), 북방 유목민족적 묘제, 마구류(馬具類), 도질토기(陶質土器), 오르도스형 동복(銅復) 등 북방유목민족의 습속과 유물이 다량으로 반영 되거나 출토되고 있는 사실이다.

둘째, 통형동기(筒形銅器), 파형동기(巴形銅器), 각종 벽옥제(碧玉製)의 석제품(石製品)등 고대 일본과의 교섭실태를 구명할 수 있는 자료의 출토 등이다. 이와 같이 대성동유적은 가야의 성립과 전개, 성격, 정치·사회구조를 해명하는데 으뜸가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목관묘

목관묘모습

목관묘는 모두 34기가 조사되었으며, 대체로 표고 9m이하의 평지(平地)나 거의 평지(平地)에 가까운 지역에 영조되었다. 목관묘의 주축방향은 7기만 남북향(南北向)이고, 나머지는 동서향 (東西向)으로서 동서향(東西向)이 압도적으로 많다. 묘광의 깊이가 10cm전후로서 거의 바닥만 잔존하는 것, 40cm전후인 것, 70cm이상의 깊은 것 등 3종류가 있다.

목관은 대체로 두께 3cm내외의 판재(板材)로 조립한 것으로서, 평면형태는 'ㅍ'자형, 단면형태는 'ㅂ'자형의 상자형태이다. 목관묘의 구조와 출토물로 보아 1~2 세기 때에 영조되었던 것으로 추정 되며 삼한시대 김해에 존재하였던 구야국의 문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목관묘출토유적

목관묘출토유적 목관묘에서는 각종의 토기(土器)ㆍ철기(鐵器)ㆍ칠기(漆器)ㆍ장신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삼한시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와질토기가 대부분이다. 기종은 조합우각형 파수부호(組合牛角形把 手附壺)ㆍ주머니호ㆍ 소형옹(小形甕)ㆍ단경호(短頸壺) 등으로, 삼한시대의 토기변화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철기는 철촉ㆍ철모(鐵矛)와 같은 무기류, 철부(鐵斧)ㆍ철겸(鐵鎌) 등의 농공구류가 몇 점씩만 부장 되었을 뿐 그 수량은 많지 않다. 칠기는 일부의 목관묘에서 칠피(漆皮)만 남은 상태로 출토 되었는데 기형(器形)도 불확실하다. 장신구류로는 청색의 유리구슬로 만든 목걸이나 팔찌를 착용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곽묘

목곽묘 모습

160호분을 비롯하여 총 59기의 목곽묘가 조사되었다. 시상(屍床)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의해 2개 유형으로 나눠지는데, 이 속성은 시간적인 흐름도 동시에 반영하고 있어 시상(屍床)이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변화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또 주ㆍ부곽을 갖춘 것과 그렇지 못한 유형으로 대별되는데, 유구의 규모, 부장유물의 양, 유구의 분포빈도 등으로 미루어 전자의 경우가 이 유적의 상위계층 묘인것으로 추정된다.

160호분
예안리 최고(最古)단계의 목곽묘로서 별도의 부곽이 마련되어 있는데 예안리 유적 내에서는 가장 대형급에 속하는 것이다. 최후 단계의 와질토기와 양이부호(兩耳附壺)를 비롯한 항아리류 일색의 고식(古式) 도질토기, 철촉ㆍ철모ㆍ철부 등의 철제무기류, 골촉 등 학술적으로 귀중한 가치가 있는 유물이 다량 부장되어 있었다.

138호분
4세기 중엽 무렵에 만들어진 목곽묘인데, 부곽이 별도로 딸린 구조이다. 주곽에는 큼직한 돌을 깔아 시상(屍床)을 마련하였다. 출토 유물은 노형기대에 와질토기적인 요소가 약간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미 대부분 도질토기로 전환되고 있다.

150호분
단독 묘로서는 대형급에 속하는 목곽묘이다. 본 유적에서 유일하게 가죽 끈으로 엮어 만든 철제투구와 더불어, 유자이기(有刺利器), 철부, 철촉 등 철제 무구ㆍ무기류가 부장되어 있는 반면 토기류는 1점도 매장되어 있지 않았다.

목곽묘출토토기

목곽묘출토토기모습 목곽묘에서는 노형토기(爐形土器) 등의 와질토기와 각종의 도질토기가 출토 되었으며 주류를 이루는 것은 도질토기이다. 3세기말로 추정되는 29호분에서는 최고식(最古式)의 도질토기가 출토되었는데 양이부호(兩耳附壺)ㆍ단경호(短頸壺) 등 항아리류이다. 이와 같이 도질토기는 항아리류가 먼저 등장한 후 4세기가 되면서 점차 고배(高杯)ㆍ 노형기대(爐形器臺), 광구소호(廣口小壺), 소형기대(小形器臺), 유개대부호(有蓋臺附壺), 발형기대(鉢形器臺) 등 세련된 곡선미를 특징으로 하는 각종의 토기가 만들어진다.

출토철기와 무기

출토철기와 무기

판상철부(板狀鐵斧) 100점 정도를 열(列)을 지어 깔았으며, 이후 4세기 때에는 판상철부(板狀鐵斧)를 대신하여 철정(鐵鋌)을 깔기도 하고 10장씩 묶어 쌓아 두기도 하였다. 철정(鐵鋌)은 철기제작의 중간소재임과 동시에 화폐 대용품의 역할도 겸한 것이다.

철제 무기로는 환두대도(環頭大刀), 철검(鐵劍), 철창(鐵槍), 철모(鐵矛), 철촉 등이 있으며, 45호분에서는 환두대도(環頭大刀)를 구부려서 부장한 것도 있다. 이와 같이 무기를 구부려 부장하는 습속은 북방유목민족의 특유한 매장습속으로 금관가야의 성장과 전개과정을 구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목곽묘출토갑주

목곽묘출토갑주 판상철부(板狀鐵斧) 100점 정도를 열(列)을 지어 깔았으며, 이후 4세기 대에는 판상철부(板狀鐵斧)를 대신하여 철정(鐵鋌)을 깔기도 하고 10장씩 묶어 쌓아 두기도 하였다. 철정(鐵鋌)은 철기제작의 중간소재임과 동시에 화폐 대용품의 역할도 겸한 것이다. 철제 무기로는 환두대도(環頭大刀), 철검(鐵劍), 철창(鐵槍), 철모(鐵矛), 철촉 등이 있으며, 45호분에서는 환두대도(環頭大刀)를 구부려서 부장한 것도 있다. 이와 같이 무기를 구부려 부장하는 습속은 북방유목민족의 특유한 매장습속으로 금관가야의 성장과 전개과정을 구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목곽묘출토마구

목곽묘출토갑주

목곽묘에서는 철제(鐵製)의 갑주(甲胄)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투구(胄)는 18호분에서 위쪽이 S자형으로 만곡(彎曲)된 종세장판혁철주(縱細長板革綴胄)를 비롯하여, 10호분과 같은 소형분에도 1점이 부장되는 등 4세기 전반부터 정형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목곽묘출토갑주 갑옷(甲)에는 판갑(板甲)과 찰갑(札甲)이 있는데, 판갑은 종장판판갑(縱長板板甲)이 4세기 대 무덤에서는 주곽에, 5세기 전엽의 무덤에서는 부곽에 부장되는 특징을 보인다. 찰갑(札甲)은 3호분과 같은 4세기후엽의 무덤에서부터 부장되기 시작하여, 39호분 주곽에서는 판갑 (板甲)과 함께 찰갑(札甲)의 부속구인 경갑(頸甲), 요갑(腰甲)이 세트로 부장되고 있는 등, 4~5세기대의 갑주자료가 풍부하게 출토되어 있다.

목곽묘출토장신구

목곽묘출토장신구 목곽묘에서 출토된 장신구로는 수정, 마노, 비취, 호박, 유리 등으로 만든 구슬류가 대부분이다. 수정은 절자옥(切子玉), 비취와 호박은 곡옥(曲玉), 마노는 관옥(管玉), 유리는 환옥(丸玉)이 많다. 이 구슬들은 대부분 목걸이로 사용되었으나 18호분에서 출토된 비취제의 곡옥과 벽옥제의 관옥은 귀걸이로, 7호분 출토 수정제 절자옥은 팔찌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외래계유물

출토외래계유물

중국계의 유물로는 2, 14, 23호분에서 출토된 거울이 있는데 모두 중국 후한대 (後漢代)의 전세경(傳世鏡) 이다. 2, 23호분의 것은 방격규구사신경(方格規矩四神鏡)이며, 14호분의 것은 내행화문경(內行花文鏡)의 깨진 조각인데, 거울조각에 구멍을 뚫어 펜던트로 사용하였다.

이와 같이 무덤에 거울이 집중적으로 매납되는 것은 이 지역이 이 무렵부터 종교적ㆍ군사적 권위에 의한 통치체제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북방계의 유물로는 29, 47호분에서 각 1점씩 출토된 동복과 11호분에서 검출된 호형대구(虎形帶鉤) 등이 있다. 특히, 동복은 그 특징으로 보아 「북방식 동복」범주에 속하는 것인데 형태가 가장 유사하다는 점에서 오르도스(Ordos)동복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직접적인 전파지는 고구려ㆍ부여의 고지(古地)인 중국 지린성(吉林省)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북방유물의 존재는 가야문화에 북방문화가 의외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유물로는 통형동기(筒形銅器), 파형동기(巴形銅器), 벽옥제(碧玉製)석제품 등이 있다.

통형동기는 5세기 전엽의 무덤인 1호분에서 8점을 비롯하여 모두 16점이 출토되었다. 대체로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전엽에 이르는 무덤에 한정되고 있다. 이들 통형동기는 근년(近年)까지 일본에서 많이 출토되어 일본제일 것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최근 대성동을 비롯한 가야지역에서의 급격한 출토량 증가와 그 연대를 감안하면 가야에서 일본으로 파급된 유물일 가능성이 크다. 그 밖에 2, 13, 18호분에서 출토된 파형동기와 벽옥으로 만든 촉형ㆍ이형(異形)ㆍ방추차형(紡錘車形)의 석제품 등은 일본제인데, 이들은 당시 가야와 왜(倭)의 교섭의 산물로서 왜의 유력 집단이 금관가야에 헌상한 물품이 부장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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