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김해를 가야(伽倻) 너를 만난다


조개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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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회현리 조개더미

김해 회현리 조개더미
  • 분류 조개더미(사적제2호)
  • 소재지 김해시 회현동(봉황동) 253
  • 시대 원삼국
  • 규격 5,098㎢

이 유적은 낙동강 하류의 충적평야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높이 7m, 동서 길이 약 130m, 남북 너비 약 30m의 낮은 구릉위에 형성된 조개더미로 남부지방 원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1907년에 발견되어 1920년에 1차 발굴되었고 이 당시의 행정구역에 따라 회현리 조개더미로 명명되었다. 1992년에 회현리 조개더미가 있는 봉황대(鳳凰臺) 주변에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1920년 발굴을 통해 왕망(王莽)의 화천(貨泉)이 발견되었다. 왕망의 화천은 중국 전한과 후한 사이의 신대(新代)에 사용되었던 화폐로, 이 유적의 연대를 기원전후한 시기까지 올려보고 있다. 최근 회청색연질토기(灰靑色軟質土器)시대의 설정을 주장하는 논리와 함께 이 유적의 상한연대를 3세기 이후로 보는 견해도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때 발견된 탄화미는 고대미(古代米) 연구의 중요자료로서 우리나라의 도작사(稻作史)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1934년의 조사에서는 지석묘(支石墓), 석관묘(石棺墓), 옹관묘(饔棺墓) 등이 발견되어 조개더미가 형성되기 이전의 고인돌 및 석관묘 유구와 그 이후의 원삼국시대 조개더미가 중첩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발견된 왕망의 화천과 김해식 옹관은 이 지역이 원삼국시대에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교역의 중요한 길목이었음을 보여준다. 1992~1993년에 실시된 봉황대 일원에 대한 조사에서는 조개더미와 주거지, 폐기장, 유물포함층 등이 확인되었는데 동쪽 사면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확인된 조개더미는 A.D 3~6세기에 걸쳐 형성된 것이며, 군집을 이루는 주거지는 3~6세기대의 장기간에 걸쳐 축조된 것이다. 유적의 규모는 5,098㎢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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